브렉시트
추천글 : 【세계사】 세계사 목차
브렉시트는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떠나는 사건”으로 간단히 요약되지만, 실제로는 국민투표 하나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2016년 한 번의 선택이 영국 정치의 권력 구조, 영국 내부의 지역 갈등, EU와의 법·경제 관계를 동시에 흔들었고, 그 뒤 몇 년은 ‘탈퇴 자체’보다 ‘어떤 방식으로 탈퇴할 것인가’를 놓고 싸운 시간에 가까웠다. 2016년 6월, 영국은 국민투표로 EU 탈퇴(Leave) 51.9%, 잔류(Remain) 48.1%라는 결과를 만들었다. 잔류를 전제로 판을 짰던 당시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은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고, 보수당은 테리사 메이를 새 총리로 세웠다. 메이는 “브렉시트는 브렉시트다”라는 구호로 탈퇴 절차를 밀어붙였지만, 바로 그 순간부터 질문이 바뀌었다. ‘탈퇴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탈퇴냐’가 됐다.
영국이 EU를 떠나려면 법적 절차가 필요했다. 2017년 3월, 영국은 리스본 조약 50조(Article 50)를 발동했다. 이 조항은 “통보 후 2년”이라는 시계를 작동시켰고, 협상이 합의 없이 끝나면 자동으로 ‘노딜(무협정) 탈퇴’가 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정치가 타협에 실패할수록 ‘시간’이 영국을 압박하는 형태가 됐다. 메이는 협상에서 우위를 잡고 국내 정치적 정당성을 강화하려고 2017년 6월 조기총선을 선택했다. 계산은 “의석을 늘려 협상을 쉽게 하겠다”는 것이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보수당은 과반을 잃었고, 북아일랜드의 민주연합당(DUP) 지원에 의존하는 소수정부가 됐다. 이후 브렉시트 협상은 더 어려워졌다. 영국 내부 합의가 약해지면, EU는 영국이 어떤 약속을 지킬 수 있는지부터 의심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 시기 브렉시트 협상은 몇 가지 큰 쟁점으로 굳어졌다. 첫째는 ‘이혼 합의금’이라 불린 재정 정산이었다. 영국이 EU 회원국으로서 이미 약속했던 예산 분담과 사업 비용을 어디까지 책임질지 정리해야 했다. 둘째는 시민권 문제였다. 영국에 사는 EU 시민, EU에 사는 영국 시민의 거주·노동·사회보장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지가 걸려 있었다. 셋째이자 가장 폭발력이 컸던 쟁점은 국경이었다. 특히 북아일랜드-아일랜드 국경은 단순한 통관 문제가 아니라, 평화협정(1998년 성금요일 협정)이 전제로 삼았던 ‘사실상 열린 국경’을 어떻게 유지할지의 문제였다. 영국이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완전히 벗어나면 원칙적으로는 국경에서 검사가 필요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국경에 물리적 장벽이 생기는 순간, 북아일랜드 내부의 갈등이 다시 불붙을 수 있다는 공포가 컸다. 그래서 협상은 ‘하드 보더(물리적 국경)’를 피하는 장치를 찾는 데 매달렸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이른바 ‘백스톱(backstop)’이었다. 간단히 말해 “다른 해법이 마련될 때까지는 국경이 생기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걸어두겠다”는 발상이었다. EU는 이를 신뢰 장치로 봤고, 영국 내 강경파는 “영국을 EU 규칙에 묶어두는 덫”으로 봤다. 같은 문장을 보고 정반대로 해석하는 순간, 합의문은 국내 정치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졌다.
2018년 말, 영국 정부는 EU와 ‘탈퇴협정(Withdrawal Agreement)’을 마련했다. 협정에는 재정 정산, 시민권 보장, 그리고 일정 기간 기존 규칙을 유지하는 전환기간(transition) 같은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정작 영국 의회는 그 합의문을 연달아 부결했다. 2019년 1월 첫 표결에서 메이 정부의 합의안은 역사적 수준의 큰 격차로 패배했고, 이후 수정·재표결도 같은 벽을 넘지 못했다. 이 국면에서 영국이 마주한 선택지는 대략 세 갈래로 정리되곤 했다. 첫째, 탈퇴 시한을 미루고 EU와 다시 협상하거나 국내 합의를 새로 만드는 길이었다. 둘째, 합의 없이 탈퇴하는 ‘노딜’이었다. 셋째, 브렉시트를 취소하거나(또는 2차 국민투표 같은 방식으로) 결정을 되돌리는 길이었다. 문제는 셋 다 정치적 비용이 컸고, 그 비용을 누가 감당할지에 대한 합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결국 메이는 돌파에 실패했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뒤이어 보리스 존슨이 총리가 되면서 전략이 바뀌었다. “노딜도 불사하겠다”는 압박으로 협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방식이었다. 2019년에는 조기총선이 다시 치러졌고, 보수당은 큰 승리를 거두며 의회 과반을 회복했다. 이때부터 브렉시트는 ‘가능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실행된다’의 문제가 됐다. 영국은 2020년 1월 31일 공식적으로 EU를 탈퇴했다. 다만 바로 모든 관계가 끊긴 것은 아니었다. 2020년 말까지는 전환기간이 이어져, 무역과 규제는 상당 부분 기존 체계를 유지했다. 그 사이 영국과 EU는 미래 관계, 특히 무역협정을 놓고 다시 협상을 벌였고, 2020년 말 ‘무역협력협정(TCA)’으로 기본 틀을 마련했다. 브렉시트의 핵심은 한 가지였다. 영국이 “규칙을 스스로 정하겠다”는 주권을 강화할수록, EU 단일시장에 ‘예전처럼’ 접근하기는 어려워진다는 역설이었다. 규제 자율성과 시장 접근성은 보통 동시에 극대화되기 어렵다. 그래서 영국 정치의 분열은 ‘감정 대 이성’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의 조합이 충돌한 결과에 가까웠다.
정리하면, 2016년의 국민투표는 출발선에 불과했다. 2017년 Article 50 발동이 협상의 시계를 돌렸고, 2017년 조기총선은 정부를 약하게 만들었다. 북아일랜드 국경 문제는 협상 전체를 붙잡아두는 고리가 됐고, 2019년 의회 부결은 정치 위기를 극단으로 몰아넣었다. 이후 2019년 총선으로 권력이 재정렬되면서 브렉시트는 2020년 현실이 됐다. 브렉시트는 한 번의 ‘탈퇴 선언’이 아니라, 국가가 가진 선택지의 대가를 끝까지 계산해야 했던 과정이었다.
입력: 2020.08.07 22:11
'▶ 역사과학 > ▷ 세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세계사】 세계사 목차 (0) | 2022.10.21 |
|---|---|
| 【세계사】 세계사 노트 (0) | 2022.06.25 |
| 【세계사】 문명 (0) | 2019.03.29 |
| 【세계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0) | 2018.09.13 |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