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고뭉치의 이상 세계
‘남쪽으로 튀어’는 흥미롭다. 재미있다. 강렬하다. 마치 만화를 보는 듯이 빠르고 거침없이 달려 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제각기 고유의 색채를 가진 캐릭터들이 제멋대로 돌출되어 숨막히는 장면을 그려낸다. 단연 개성만점 캐릭터들의 독특한 사건들은 남쪽이든 뭐든 톡톡 튀고 있다.
우선 아주 재미있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큰 사건을 혼자서 다 만들어 내는가 하면 엉뚱한 구석도 있다.그는 바로 과격파 운동권 출신이었던 ‘우에하라 이치로’로 지로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요, 임의가 아니라 의무라니까요, 국민의 의무!”
“그럼 나는 국민을 관두겠어.”
“예?”
“일본 국민이기를 관두겠다고. 애초부터 원했던 일도 아니었으니까.”
“어디, 해외로 이주하시려고요?”
“내가 왜 해외에 나가? 여기 거주한 채로 국민이기를 관둘 거야.”
괴짜 중의 괴짜가 보여줄 법한 이 엉뚱한 발상,애써 참았던 웃음마저 나오게 한다. 그는 이렇듯 뚜렷한 색채가 엿보인다. 또한 반정부적이고 반자본적이며 비타협적이어서 오로지 홀로투쟁만이 존재하는 그에겐 다른 이들에게 인상적으로 남기는 무언가가 있다.
그의 아들, 지로는 또다른 색채를 자아낸다. 초등학교 6학년이라는 나이에 이제 겨우 사춘기에 접어들어 성장통을 앓는가 하면 식욕이 왕성해지
기 시작한 영락없는 꼬마의 이미지를 풍긴다. 그는 누구나 그때면 그렇듯 우정이나 이성 따위의 솔직하고 사소한 고민을 시작한다. 하지만 지로는 가족의 색다른 이력을 알게 되고 여느 또래와 달리 힘겨운 일들을 무수히 겪게 되면서 서서히 성숙해진다. 더욱이 동생 모모코를 살피고 가족을 걱정하며 어려운 결단을 내릴 줄 아는 모습은 오히려 어른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 중 단연 아버지에 대한 태도의 변화가 돋보인다. 처음 지로는 사회에 타협하지 않는 아버지의 태도에 불만이 많았다.평범한 아버지,회사 다니는 아버지가 오히려 부러워졌다. 학교,언론,사회 등 이들이 겉으로는 선량한 모습을 보이나 이면의 모습이 있단 걸 알게 되고 그들과 싸우는 아버지를 응원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서 아버지에 대해 새롭게 바라본다. 결국 막바지에 이르러 헤어짐에서 묻어나오는 슬픔어린 아버지의 말을 깊게 새기게 된다.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하지만 너는 아버지를 따라할 거 없어. 그냥 네 생각대로 살아가면 돼. 아버지 뱃속에는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벌레가 있어서 그게 날뛰기 시작하면 비위짱이 틀어져서 내가 나가 아니게 돼. 한마디로 바보야, 바보.”
이치로가 풍기는 강렬한 색채는 자칫 반감을 일으키기 쉽다. 그것은 적을 쉽게 만드는 속성의 본질이며 사람들의 눈초리를 사는 계기이다. 그렇다. 그는 답답한 사람으로 비쳐지고 있다. 그렇지만 지로의 변화를 통해서 그의 올곧음과 완강함,진취적 성향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지로네 학교로 쳐들어가 지나친 여행비의 진상을 요구했던 사건을 살펴보자. 지나치게 예민하게 구는 것이리라, 누구나 동일한 평가를 내릴 터. 하지만 거기에는 리베이트 행위가 오갔고, 그러한 반대행동이 전적으로 옳았음을 후에 와서 재평가하게 만든다.
‘남쪽으로 튀어’는 1권과 2권의 풍경이 확연히 다르게 나타난다. 도시와 섬이라는 서로 다른 풍경 속에 절망과 포기에서 희망과 도전으로 분위기가 변화한다. 그것 때문일까? 이치로의 행동이 다소 점잖게 보이지 뭔가! 그의 가족들도 호의적으로 변했다. 심지어 가족들과 갈등하던 요코까지도 “이것도 괜찮은데”하고 말하니 흐뭇하기 그지 없다. 앞서 보이던 모습과 달리 정말 행복해 보인다. 이게 네가 추구한 이상이었던 거냐, 이치로! 이렇게 이별로써 결말짓는 ‘남쪽으로 튀어’는 희망찬 꿈을 꾸며 마무리된다.
입력: 2012.09.15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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