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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 문법】 0강. 스페인어의 기원

 

0강. 스페인어의 기원

 

추천글 : 【스페인어】 스페인어 목차


1. 로마 이전 시대 [본문]

2. 로마시대 [본문]

3. 아랍 통치 시대 [본문]

4. 스페인의 독립 [본문]

5. 스페인어 [본문]


 

1. 로마 이전 시대 [목차]

이베리아 반도의 북쪽 피레네 산맥에는 바스크어를 쓰는 바스크족이 살았다. 이 민족은 어부와 농부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독립적인 특성으로 인하여 반도의 다른 지역과는 고립된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베로족은 지중해 동쪽 지방에 거주했다. 함족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이 민족인 일찍이 아프리카 북부지역을 통하여 이곳으로 이주하였다. 이들은 사냥을 즐기며 온화한 성품을 지녔다. 또한 이들은 고유의 문자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그 문자로 쓰여진 문헌이 보존되어 있기도 하다. 중부와 북동부 지역네는 타르떼시오족이 거주했다. 이들은 옛날부터 동양과 교역을 했고, 신비스런 문명을 창조하였으며 문화적으로 가장 앞서 있었다.

기원전 7세기 경 유럽 전역에 거주하던 켈트족이 반도로 이주해 왔다. 이들은 갈리시아, 엑스뜨레마두라, 중부 고원지역 등에 정착했다. 이들은 이베로족과 혼합되어 셀티베로족을 형성하게 되었다.

 

기원전 11세기 경에는 페니키아인이 반도의 남부 해안에 식민지를 건설하였고, 이들의 목적은 단순한 교역에 불과했으나, 이들은 뛰어난 상인들로 금은 세공, 광업 등에 영향을 주었다. 페니키아인은 글 쓰는 법과 화폐 사용법을 소개하였으며 금속류를 이용하는 기술과 방직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지중해 해안 가까운 곳을 택한 또 다른 종족은 문화나 상업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발전한 그리스인이었다. 그리스인은 지중해 지역에 식민지를 세웠고, 종교나 정치면에 있어서도 반도 원주민들의 지적 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당시 이베리아 반도에는 언어의 통일이 없었다. 당시에는 바스크어, 이베리아어, 타르타시아, 리구르어 등이 사용되었으며, 그후 바스크어를 제외한 모든 언어들은 라틴어로 대체되면서 소멸되었다. 이러한 로마 이전의 언어들은 까스띠야어의 음성, 어휘 등에 영향을 주었다.

 

 

2. 로마시대 [목차]

기원전 3세기 경에 로마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하였다. 2세기 후에 반도 전체에 걸친 로마인의 통치는 완전한 반석 위에 놓여졌으며 로마의 사상, 언어, 풍습은 전 지역에 파급되어 이전 시대의 그것과 완전히 교체되었다. 반도의 원주민들은 차차 그들의 고유 언어를 잊어가고 로마의 군인들과 식민관료들이 사용하는 통속라틴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통속라틴어가 변화 및 발전하여 오늘날의 스페인어가 된 것이다. 이렇게 혀엉된 언어는 정통 라틴어가 아니라 민중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대중적인 언어였기 때문에, 체계화되지 않은 면이 있었고 문장의 구성이 단순하였다. 스페인어에 도입된 예술, 종교, 과학 부문에 관련된 많은 그리스어의 단어는 로마의 반도 침략 이전에 이미 라틴어화되어 그것이 반도로 넘어와 스페인어화된 것으로, 이전 그리스가 상업 거점을 건설하고 원주민과 교역하던 시대에 유입된 것이 아니다.

 

로마제국은 3세기 경부터 북부지방에 본거지를 둔 야만족에 의해 빈번한 침공을 받았고 그로부터 2세기 후에는 전 반도가 이들에게 점령당하기도 하였으며, 계속해서 알라노, 수에보, 반달 등과 같은 종족의 침략을 받았다. 그후 414년 기독교를 신봉하는 서고트족이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하게 되었다. 서고트족의 통치 기간 중에 모든 공공학교는 폐쇄되었고, 신학교, 수도원 등이 번성하여 당시 문화 활동은 종교가 주도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한때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했던 게르만족의 언어는 반도의 라틴어에 별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현재 스페인어에 있는 게르만계의 어휘는 로마인들의 반도 정복 이전에 라틴어에 도입되어 라틴어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아랍 통치 시대 [목차]

북부 아프리카에 본거지를 둔 회교 아랍인의 이베리아 반도 침략은 서기 711년에  시작되어 북부지방의 아스뚜리아스만을 제외한 전 반도를 점령하였다. 그 후 스페인의 소수 기독교인들이 회교로 개종하였으나 대부분은 회교의 통치하에서 종교 문화 관습을 지켰다. 신앙과 관념이 다른 이 두 종족의 공존은 인류학적, 언어학적으로 반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여러 지방에서 아랍인들은 점차 그들의 고유 언어를 버리고 스페인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아랍어의 많은 어휘가 스페인어에 도입되어 스페인어화되었으며, 따라서 스페인어의 산업, 행정에 관한 많은 전문 용어는 아랍어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음성학적인 면이나 형태론적인 면에서 아랍어의 영향은 거의 없다. 아랍어로부터 약 4,000개의 단어가 스페인어에 유입되었는데, 라틴어를 제외한다면 스페인어에 가장 많은 차용어를 제공한 언어가 아랍어이다. 스페인어에 미친 아랍어 영향의 주요한 원천은 안달루시아 지역의 아랍어이다. 안달루시아 지역의 아랍어에는 지중해와 베르베르인, 비잔틴,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등과 같은 요소의 유입 등을 통하여, 외부의 여러 요소가 흡수되어 있었다.

 

 

4. 스페인의 독립 [목차]

아랍족이 침공하였을 때 남아 있던 소수의 서고트인과 회교정치를 반대하던 일부 주민들은 아스뚜리아스로 이주하여 뻴라요를 수반으로 한 독립국을 형성하여, 722년에 일어난 유명한 꼬바동가 전투를 시초로 영토 회복전쟁을 개시한다. 기독교인들로 이루어진 독립군은 서서히 아랍인들을 남쪽으로 퇴각시킨다. 아랍인의 퇴각과 함께, 레온, 갈리시아, 나바라, 까스띠야, 아라곤 등의 왕국과 까딸루냐 등이 세워졌다. 회교도인들을 상대로 한 이 영토회복전쟁은 8세기 초에 시작되어 1492년 최후의 왕국 그라나다가 함락될 때까지 800년 가까이 걸렸고, 바로 그 해에 까스띠야 왕국의 가톨릭 국왕부처의 지원을 받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했다.

 

 

5. 스페인어 [목차]

통속라틴어는 스페인의 지리적 또는 역사적 상황으로 인하여 여러 형태의 언어로 발전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방언은 중부지방의 까스띠야어, 동부지방의 까딸루냐어, 그리고 서부지방의 갈리시아-포르투갈어이다. 영토회복전쟁과 함께, 까스띠야 왕국이 영토를 확장하게 되면서 까스띠야어는 남쪽으로 전파 및 보급되었다. 반도의 대부분의 주민들이 까스띠야어를 사용하게 되어 까스띠야어가 반도의 가장 유력한 언어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신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 사람들이 그들의 식민지였던 중남미에 전해준 언어도 까스띠야어이며, 스페인 최초의 문학 예술도 까스띠야어로 표현되었다. 이런 배경과 상황으로 이 언어를 까스띠야어 혹은 스페인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스페인어의 표준어가 된 것이다.

 

입력: 2018.07.29 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