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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 이집트 문자 해독

 

이집트 문자 해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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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나폴레옹은 38,000 명의 군사와 175 명의 학자를 데리고 이집트 원정을 떠난다. 그리고 1799년 알렉산드리아(Alexandia)로부터 불과 50 km 떨어진 로제타 마을(현재 Rashid로 불림)에서, 원정대 소속의 장교였던 피에르 부사르(Pierre-François Bouchard, 1772~1822)가 요새를 쌓다가 가로 72 cm, 세로 125 cm, 두께 28 cm 의 현무암질 비석인 로제타석(Rosseta stone)을 발견한다. 그런데 1801년 알렉산드리아에서 나폴레옹 군대가 영국 군대에게 패하자, 그들이 찾아낸 수많은 이집트 유물이 영국 군대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그렇게 되어 1802 년부터 로제타석이 대영박물관에 보관 및 전시되고 있다. 하지만 나폴레옹 군대는 로제타석을 석고로 뜬 주형을 가지고 본국으로 귀국했기 때문에 프랑스도 영국처럼 로제타석을 연구할 수 있었다. 

 

로제타석의 최상단에는 이집트 상형문자(Hieroglyph), 중간에는 이집트 민용문자(Demotic), 최하단에는 그리스 문자가 쓰여져 있다. 로제타석은 B.C. 196 년 즉위 1주년을 맞이한 13 세의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5 세(Ptolemy Ⅴ, 205~180 B.C.)의 후원으로 만들어졌다. 비석의 내용은 사제들이 혼란스러운 국가를 바로잡아 준 파라오를 칭송하는 것이었는데, 당시 이집트는 그리스인이 세운 신왕국 시대(New Kingdom)였기 때문에 사제들이 쓰던 이집트 상형문자, 이집트 민중이 쓰던 민용문자에 더불어 그리스 문자가 기입되었다. 로제타석 위에 동일한 내용이 서로 다른 문자로 쓰여 있기 때문에 로제타석은 4세기 이후 잊혀진 상형문자를 해독하려는 학자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대상이었다. 참고로 당시 언어학자들은 고대 그리스어에 능통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로제타석에 쓰여진 내용이 모두 같은 내용임을 확신할 수 있었을까? 그리스어 부분의 마지막 문장에는 “이는 신성문자와 민용문자, 그리고 그리스 문자로 쓰여있다,”라는 언급이 나온다. 여기서 신성문자는 상형문자를 가리키기 때문에 로제타석에 같은 내용이 3 개의 문자로 쓰여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1799). (ref) ]


그 뒤 프랑스의 언어학자들은 민용문자에 먼저 집중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로제타석 중간에 위치한 민용문자는 상형문자에 비해 손상이 적었고 더 상징적으로, 즉 문자스럽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 중 실베스터 남작(Silvestre de Sacy, 1758~1838)은 그리스인의 이름의 경우 같은 음가의 민용문자를 기입할 것이라고 가정한 뒤 그리스 문자로 쓰인 부분과 비교해 보면서 민용문자로 표기된 그리스인의 이름들을 찾아내었다. 그렇게 그는 1802년 “Alexandros”, “Alexandreia”, “Ptolemaios”, “Arsinoe”, “Epiphanes” 등 5개의 이름을 찾아내고, 이들의 음가를 밝혀내었다. 이로써 그는 민용문자 16 개의 알파벳을 규명하였다. (ref) 그 해 실베스터의 제자 요한 아커블라드(Johan David Åkerblad, 1763~1819)가 그 연구를 이어받아 2달만에 29개의 모든 민용문자를 알파벳과 대응시키는데 성공한다. 이때 요한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집트 민용언어에서 파생된 콥트어(the Coptic)를 그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콥트어는 비록 고대 이집트의 언어이지만 현재까지도 이집트인의 10%가 속하는 콥트 교회의 예배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의 콥트어에 대한 지식은 ‘love’, ‘temple’, 그리고 ‘Greek’과 같은 단어를 인식하게 했으며, 콥트어와의 유사성을 근거로 민용문자가 표음문자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ref)   

 

그 뒤 토마스 영(Thomas Young, 1773~1829)도 로제타석 해독 열풍에 끼어든다. 그는 과학자로서도 명성을 떨친 사람이다. 영은 광학, 심리학, 물리학, 음악, 이집트학 등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고, 무엇보다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히브리어, 아랍어 등 14개의 언어를 구사할 정도로 언어에 타고난 천재였다. 그는 그리스 문자를 해석하면서 “and”와 “king”과 같은 특정 단어의 빈도수를 조사하였다. 그리고 민용문자에 등장하는 비슷한 빈도수의 단어들의 후보들을 고른 뒤 기존에 아커블라드가 조사한 29개의 문자들과 비교해 보면서, 1814년에 이르러 민용문자를 모두 번역하게 된다. 또한 그는 상형문자를 동일한 방법으로 분석해 보면서 직사각형이나 타원으로 둘러싸인 글자들(카르투슈; Cartouche)은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이름(e.g., 프톨레마이오스)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하지만 상형문자는 표의문자와 표음문자가 적당히 섞여 있었기 때문에, 아커블라 드가 추측했던 것처럼 상형문자가 표음문자일 것으로 추론한 그는 결국 풀어낼 수 없었다.


또 다른 언어의 천재, 샹폴리옹(Jean-Francois Champollion, 1790~1832)이 등장하고 나서야 이집트 상형문자가 해독될 수 있었다. 그는 1807년 17세가 됐을 때 그의 능력을 인정 받아 교수가 되었고, 20세 가 되던 해 콥트어,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영 어, 중국어 등 12개 언어를 구사했다. 그는 상형문자 를 해독하려면 왕의 이름부터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 다. 왜냐하면 로제타석에서 그리스문자로 쓰여진 내 용은 사제들이 프톨레마이오스 왕을 칭송하는 것이 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상형문자로 쓰여진 글에도 왕의 이름이 몇 차례 이상은 등장할 것으로 본 것이다. 그는 유독 타원형으로 둘러싸인 카르투슈에 주목했고, 이를 왕의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옳은 생각이었다. 사실 이 발상은 토마스 영이 밝혀낸 내용 중 하나와 일치한다. 아마도 당시에는 타원형으로 둘러싸인 문자가 특별한 무엇일 거라는 추측이 만연했을 것이고, 이를 논리 적으로 보인 것이 토마스 영일 것이다. 

 

Figure. 1. 타원형으로 둘러싸인 카르투슈

 

샹폴리옹은 1821년 필레 섬(Philae Island)의 오벨리스크(Obelisk)에 적힌 상형문자들을 추가로 분석하게 된다. 필레 오벨리스크는 1815 년 고고학자 뱅크스(William John Bankes, 1786~1855)에 의해 발굴된 비석으로 로제타석처럼 상형문자와 그리스 문자가 함께 쓰여져 있어 ‘제 2의 로제타석’으로 불린다. 오벨리스크에 나타난 그리스어 에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름이 있었고, 로제타석에 있던 바로 그 카르투슈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프톨레마이오스를 나타내는 상형문 자를 밝혀낼 수 있었다. 상형문자가 해독된 최초의 순간이었다. 

 

Figure. 2.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에는 또 다른 카르투슈가 있었다. 샹폴리옹은 그 인물이 분명히 클레오파트라 (Cleopatra) 여왕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때 그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상형문자와 클레오파트라의 상형문자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였다.  

 

출처 : 이미지 클릭

Figure. 3. 프톨레마이오스(좌)와 클레오파트라(우)의 카르투슈]

 

아마도 샹폴리옹은 무턱대고 상형문자가 그리스어 표기와 대응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의 그리스어 표기는 ‘PTOLMIS’이고, 클레오파트라의 그리스어 표기는 ‘CLEOPATRA’ 여서 그리스어 표기의 문자와 카르투슈 내 문자가 명백히 개수가 같지 않지만, 한 번 가정해 본 것이다. 아마도 샹폴리옹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아래 과정은 스스로 한 것이다.

 

Figure. 4. 해독 예시


위의 그림을 보면 공통된 문자는 5가지 종류(식칼, 사자상, 끈 달린 방울, 타원, 정사각형)이다. 그런데 그리스어 표기 내에 공통된 문자는 P, O, L이다. 따라서 두 카르투슈에서 공통된 문자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몇 개는 중복되어 있거나 “~ 여왕” 같은 수식어구일 것이다. 따라서 P, O, L에서 어떤 상형문자 와 대응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그 반대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다. 단어 P의 경우 프톨레마이오스의 그리스 표기에서 가장 앞에 나오고, 클레오파트라의 그리스어 표기의 중간에 나온다. 그런데 이 단어가 명백히 식칼, 끈 달린 방울, 타원과 대응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타원의 경우 두 카르투슈에서 거의 끝 부분에 놓이므로 P가 클레오파트라의 그리스어 표기의 가운데에 놓인다는 사실에 위배된다. 그렇다면 P는 정사각형이거나 식칼이다. 하지만 식칼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카르투슈에 두 번 나타나므로 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P는 정사 각형이다. 이로써 상형문자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여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식칼 모양의 상형문자는 중복된 문자가 아니어야 한다. 왜냐하면 프톨레마이오스의 그리 스어 표기에 특정 알파벳이 두 번 연속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프톨레마이오스 의 카르투슈 내 문자는 7개, 그리스어 표기 내 문자는 7개로 정확히 일대일 대응이 된다. 이 결론 을 클레오파트라의 카르투슈에 그대로 적용해 본다. 

 

Figure. 5. 프톨레마이오스(좌)와 클레오파트라(우)의 카르투슈

 

그러자 두 상형문자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3개의 문자들의 위치가 프톨레마이오스의 그리스어인 ‘PTOLMIS’와 클레오파트라의 그리스어인 ‘CLEOPATRA’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알파벳 P, O, L의 위치와 동일하다는 발견을 하게 되었다. 또한 상형문자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여지고 T를 나 타내는 두 개의 다른 기호가 마치 f와 ph처럼 이형동음 관계라는 것을 밝혀 내었다. 이로써 샹폴 리옹은 상형문자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스어계 이름의 경우 표음문자로 보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된 샹폴리옹은 프톨 레마이오스 왕조가 다스렸던 이집트와 그 직후 로마가 다스렸던 이집트 당시의 가능한 많은 파피 루스를 수집하여, 1822년 9월 14일 총 27명의 파라오의 이름을 해독하고 상형문자의 모든 음가를 밝혀내었다. 

 

바로 그 해에, 그는 문득 콥트어에서 태양신을 나타내는 단어가 Ra이고, 이집트가 곧잘 모음 e를 생략한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람세스 왕(Ramses)을 나타내는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으로 이집트계 이름을 해독하는 데 성공한 순간이었다. 그러자 비슷한 방법으로 투트메스 (Thutmes)도 해독하는 데 성공하였고, 이를 통해 상형문자의 기본 구성원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의 나이 31세에 “상형문자는 표음문자의 성격을 가진다,”는 발표를 하자 학계가 발칵 뒤집어졌 다. 기원후 5세기 호라폴로(Horapllo)는 〈상형문자(Hieroglyphica)〉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모든 상 형문자가 그것이 나타내는 그림과 관련된 뜻을 포함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상형문자를 마치 뜻 글자로 보아 세 개의 선이 물을 의미하고, 깃발이 신을 의미한다고 언급했다. 1000년이 넘게 이집 트 상형문자를 풀고자 했던 학자들 중 아무도 한 개인의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가 한 호기심 많은 사람이 나타나, 그가 정말로 천재이든 아니든 기존 패러다임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렇게 1799년 로제타석이 발견되고 23년이 지난 1822년 상형문자의 비밀이 모두 풀리게 된다. 그 후 그는 이탈리아 토리노 박물관(Museo Egizio)에서 파라오의 이름과 통치기관이 빼곡히 적힌 파피루스를 찾아보았다. 또한 1828년 그는 6개월 동안 이집트에 위치한 신전, 왕궁, 무덤의 비문 등을 확인하러 여행을 다녔다. 그는 그의 해석 방법이 옳았음을 확인했다. 심지어 그는 이집트의   건국 연도가 B.C. 5867년이라고 계산해 내었다. (ref) 이 출처는 글의 전반적인 데이터와 사실관계를 참고하는 데 이용하였다.

 

입력: 2019.08.11 1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