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란 무엇인가: MRI 연구를 마무리하며
추천글 : 【MRI 이론】 MRI 이론 목차
a. 성공과 실패에 관하여
25년 7월 27일 드디어 MRI 관련 연구 논문이 저널에 Advanced Healthcare Materials 저널에 게재 승인되었다. (ref) 이 저널의 최근 임팩트 팩터(IF)는 10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라 아쉽게도 BRIC의 ‘한빛사’에 투고할 수 있는 기준인 IF 10을 넘기지 못했다. (어떻게 하다 보니 한빛사에도 투고하게 됐다) 그래서 이 글을 여기에 남긴다. 2020년 5월 대학생 학부연구생부터 시작한 연구가 석사를 거치며 미국에서 다른 주제로 박사 연구를 하는 지금에 이르러 드디어 마무리됐다는 생각에, 한편으론 자랑스럽고 또 한편으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안도감과 후련함이 함께 밀려온다.
나는 2019년 5월, 학부연구생으로 이 연구를 시작했던 연구실에 들어갔다. 최초에 이 연구실을 컨택한 건 어릴 때부터 갖고 있었던 MRI 연구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MRI는 수학, 물리학, 양자역학, 생물학 등이 결합한 진입 장벽이 높아 도전정신을 자아내는 융합분야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더 나아가 단순히 리딩(= 진단)하는 의료기기가 아니라 라이팅(= 치료)하는 의료기기로 만들고 싶었다. 이 연구실은 나노기술을 활용한 치료제 개발을 주로 다루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리포좀 기반 약물 전달 플랫폼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리포좀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을 개발해 기존 연구와 차별화된 독립적인 방향을 찾고 싶어했다. 마침 그 시기, 당시 연구실에서는 다른 연구실의 백 교수님과 산화철 관련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MRI에 대한 내 관심과 결합하여 MRI 조영제로도 사용되는 산화철 나노입자 쪽 연구를 담당하게 되었다. 당시 연구실은 주로 세포 실험이나 동물 실험을 중심으로 치료제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산화철 나노입자를 활용해 종양 내부의 산성 환경에서만 반응하는 약물 전달 시스템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당시 지도 교수님으로부터 받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미 수십 나노미터 크기의 산화철 나노입자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루어져 있어서 새로운 연구를 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집중한 건 초소형 산화철 나노입자였고, 특히 초소형 산화철 나노입자는 T2 조영제로 분류되는 여타 산화철 조영제와 달리 T1 조영제로도 쓰일 수 있어 여러 모로 응용할 여지가 많았다. 이 입자가 암세포 주변의 산성 환경에서만 초소형 상태가 된다면 약물 전달(1차 목표) 및 암 진단(2차 목표)에 기여할 수 있다는 계획이었다. 이는 Daishun Ling 교수님의 기존 연구를 치료제로까지 발전시켜 보자는 시도였다. 하지만 나노입자의 표면을 화학적으로 조절해 산성 환경에 반응하도록 만드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아니 그 전에 초소형 나노입자를 만드는 것부터 잘 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산화철 나노입자 합성을 시작한 건 2020년 7월이었다. 교수님으로부터 연구 제안을 컨펌 받고, 시약을 구입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당시 나는 가장 널리 쓰인다는 침전법(precipitation method)을 활용했는데, 선행 논문을 참고해서 그대로 따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합성 후 크기가 20 nm 정도로 컸던 데다가 30분이 지나자마자 입자가 바로 가라앉는 현상(aggregation)이 나타났다. 왜 그런지 이유를 찾기 위해 제법을 계속 바꿔보고, 논문의 작은 디테일까지 하나하나 다시 들여다봤다. 그래도 산화철이 계속 가라앉으니, 결국엔 방향을 틀어서 차라리 입자를 좀 더 크게 만들어 자기적 발열(자기유도 가열)을 이용한 암 치료 쪽으로 연구 방향을 바꿔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산화철 나노입자가 뭉치는 현상이 도무지 제어가 안 됐고, 그 덕에 입자들이 덩어리져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 상태로는 체내에 투입해 치료제나 진단제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방향을 모색했다. 그렇게 RGD-targeting iron oxide (탄소수가 11개 정도로 적고 아마이드기를 표면개질에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도입했지만 결합이 쉽지 않았다), histamin iron oxide, pH-sensitive imidazole iron oxide, 다공성 실리카(mesoporous silica)로 코팅하는 방식(크기가 20 nm 정도이고 안정적이었지만 초소형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등으로 접근 방향을 바꿨다. 그때가 2021년 1월쯤이었는데, 갑자기 연구 방향을 바꾼다고 지도 교수님께 핀잔을 듣기도 했었다. 돌이켜 보면, 이미 그때까지 반년 넘게 뚜렷한 결과 하나 없이 헤매고 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2020년 초부터는 생물정보학 쪽 연구도 병행하고 있었던 터라, 산화철 연구는 점점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연구에 조바심을 느껴서 이런저런 논문을 찾다가 연구실 내 재료들로 산화철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방법은 용매열 제법(solvothermal synthesis)이라는 방법이었는데 FeCl2와 FeCl3를 섞은 뒤 염기 및 sodium citrate를 섞어서 citrate-stabilized iron oxide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을 통해 2-3 nm 정도 되는 초소형 산화철 나노입자를 드디어 합성할 수 있었다. 그날 밤,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느꼈던 전율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또다시 aggregation 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cell media에서 굉장히 빠르게 aggregation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생체 내에서 작용하기도 전에 혈관에서 가라앉는 문제가 있었다. 별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하였고, 교수님께서는 내게 연구의 자유도를 주시겠다고 했다. 그렇게 2월, 3월이 지나갔다.
2020년 4월 당시 지도교수님께서 나노영챌린지라는 대회 공고를 공유해 주셨다. 산화철 연구가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않았고, 마침 그 당시 학부연구생으로 있으면서 어서 빨리 연구를 하고 싶어 했던 학생에게 연구 기회를 주고 싶기도 했다. 당시에는 자원이 한정돼 있어서, 학부연구생이 마음대로 시약을 사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에 자유도가 있었던 나는 내가 꾸준히 진행했던 산화철 나노입자 연구와 그 학생이 관심 있던 코로나19 백신 제형인 지질 나노 입자(lipid nanoparticle; LNP) 연구를 결합해 보기로 했다. 내가 합성할 수 있는 산화철 나노입자는 cell media에서 빠르게 aggregation 되니까 LNP에 담지한 뒤 세포에 전달하면 세포 내에서 빠르게 aggregation 되면서 MR 특성이 바뀌고 그래서 LNP의 백신 효율과 관련 있던 LNP의 엔도좀 탈출 효율(endosomal escape efficiency)을 측정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구체적으로는 LNP에 담지된 상태에서 산화철은 크기가 작으므로 R2 값이 낮고, 세포 내에서는 aggregation이 있으므로 R2 값이 클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교수님께서도 흔쾌히 이 연구계획을 승인해 주셨고, 그래서 나노영챌린지에 출전하게 되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SARS-CoV-2)는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보고되었고,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3월 11일에 코로나19를 세계적 대유행(팬더믹, pandemic)으로 공식 선언했다. 코로나19는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이슈였기 때문에 나노영챌린지 서류 평가에서 합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30만 원의 연구 자금을 지원받아 3개월 정도 추가 연구기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불안정한 산화철에 자신이 없어서 매순간 불안감에 휩쌓였다. "가라앉으면 어떡하지" 하면서. 그런데 흥미롭게도 LNP에 담지된 산화철은 거의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우리 산화철은 담지된 상태에서는 R2 값이 높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R2 값이 낮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세포에 처리하기 전 R2 값이 높고, 세포 내에서 R2 값이 낮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 예측과 정반대의 현상이 관찰된 것이다. 그리고 R1 값은 R2 값과 정확히 반대의 경향성을 보여주었다.
당시에 나는 MRI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MRI에는 대표적으로 R1과 R2라는 두 가지 주요한 신호 메커니즘이 있는데, 이 두 값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내부 상태를 다르게 볼 수 있다. 먼저 R1은 물 분자가 받은 라디오파 에너지를 주변 물 분자에게 얼마나 빠르게 넘기는지를 나타내는 값이다. 그런데 산화철 나노입자가 지질 나노입자(LNP) 안에 갇혀 있으면, 이 에너지를 주변에 잘 전달하지 못해서 R1 값이 떨어진다. 반면 R2는 외부에서 걸어준 자기장이 얼마나 흐트러지는지를 보여주는 값인데, 이건 자성 나노입자의 자기모멘트의 합의 ‘제곱’에 비례한다. 즉, 산화철 나노입자들이 뭉쳐 있으면 그 벡터합이 상승효과를 가지면서 그 제곱에 비례하는 자기 효과가 커지고, 그만큼 R2 값도 훨씬 커진다. 결과적으로, 산화철 나노입자가 LNP 안에서 뭉쳐 있는지 아닌지를 MRI로 알아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신호의 변화를 잘 이용하면, 나노입자의 클러스터링 상태를 세포뿐만 아니라 몸속에서 직접 들여다보는 것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보고하면서 나노영챌린지 2차를 통과할 수 있었다. 이제 11월 25일 나노영챌린지 최종 결선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이미 많은 실패를 경험한 탓에 나의 산화철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 산화철이 안정한 게 맞을까? 정말 산화철이 LNP에 담지된 게 맞을까? 정말 세포에 전달되어 엔도좀 탈출을 일으킨 게 맞을까?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다가 알게 된 사실은 "dry overnight"이라는 말이 최종 생성된 산화철 나노입자가 담겨져 있던 에탄올까지 모두 말리는 것이었는데, 그렇지 않은 채 물과 섞이면서 aggregation이 됐다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말로 용매열 제법으로 만든 산화철 나노입자가 안정한 게 맞았던 것이다. 그리고 TEM, Bio-TEM 결과를 얻어보면서 비로소 산화철이 정말로 예상했던 방식대로 행동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나노입자 및 in vitro 특성에 견고한 결과를 얻는 것이 정말 어려운 부분이지, 그 이후 in situ, in vivo 실험에서의 결과는 그렇게 어려운 과정이 아니었다.
이 연구는 11월 25일 나노영챌린지에서 나노기술협의회장상(2등상)을 수상하게 했고, 국제 PCT 특허 및 국내 특허 출원으로 이어졌으며, 대규모 산자부 백신 연구 과제에 선정되는 데에도 기여했다. 그리고 물론 처음에 실패하긴 했지만 계속 유학 입시를 도전하게 해준 모멘텀을 주었던 스크립스 연구소 박사과정 인터뷰로도 이어질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이 논문의 게재 승인을 받기까지 Nature Nanotechnology, Nature Biomedical Engineering, Nature Communications, Science Advances, Advanced Sciences, Advanced Functional Materials, Bioactive Materials, ACS Nano, Small 등 숱한 저널들로부터 스크리닝, 리뷰, 리비전, 리젝을 거치며 여러 번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이들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 실험보다 어려운 과정은 아니었기에 조바심 내지 않으며 꾸준히 하다가 결국 지금의 쾌거에 이르게 되었다.

첨부한 이미지는 나노입자의 크기를 재는 DLS라는 실험 장치의 레코드인데 이 연구를 마무리하기까지 2,500번 이상의 측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 말고도 다른 파일들도 몇 개 더 있어서 적어도 3천 번 이상의 크고 작은 실패가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적어도 3천 번 이상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했다는 생각이 들어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또한, 아무래도 새로운 컨셉의 연구이다 보니 리뷰어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5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 실패들 덕분에 nuclear magnetic resonance, condensed matter physics, phase separation, nanotechnology, cell biology, vaccine technology, bioinformatics 등 여러 분야들이 직관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하나로 합쳐진 매우 독특한 학문을 탄생시켰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간과 AI의 역할을 고민하는 지금 새로운 지식을 발굴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인간의 역할이라 믿기에 이러한 연구가 인류를 성장시키는 데에 한 발짝 더 기여했기를 바란다.
나는 실패가 성공의 꼭 필요한 요소임을 믿는다. 10번 도전하고 5번 성공하는 게, 2번 도전하고 1번 성공하는 것보다 더 이득임을 믿는다. 즉, 한 번의 성공과 한 번의 실패는 언제나 양수(> 0)이기에 남들보다 더 많이 도전하고 실패하고, 그러면서 다음의 성공을 기대하는 삶을 살아온 것 같다. Jeff Bezos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I've made billions of dollars of failures at Amazon.com. Literally, billions of dollars of failures.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라도 실패는 자연스러운 것 같다. Geoffrey Hinton이 노벨상 만찬에서 말한 것처럼 의사결정(decision making)은 human intuition(각주 : Bayesian optimization과 관련 있다)과 human reasoning(각주 : neurosymbolic deduction과 관련 있다)으로 구분되는 것 같다. (ref) 나는 개인적으로 지식을 생성한다는 점에서 human reasoning에 관심 있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대다수의 의사 결정은 human intuition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 같다. 따라서 Bayesian optimization을 통해 search space를 적절하게 탐색할 수 있어야 우리가 진실에 가장 잘 부합하는 최선의 선택을 내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탐색 과정에서 반드시 실패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2023년 기준 대한민국에는 약 54만 명의 청년 백수 문제가 있다고 한다. (ref) 이 숫자는 점점 더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며, 많은 2030 대한민국 청년들이 대한민국 특유의 치부 문화와 그것으로 말미암은 실패를 두려워하는 풍토 때문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만약 실패를 하는 게 그렇게 부끄럽고 숨겨야 하는 것이라면, 즉 실패에 대한 비용이 너무 크다면, search space는 움츠러들 것이고(shrunken) 이로 인해 진실에 부합하는 optimal solution을 찾기 전에 local optima에 도달하게 만드는 것 같다. 사회적 은둔자(recluse), 히키코모리(Hikikomori)라고 하는 것은 그 local optima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내가 만들어갈 성취에 있어서 실패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였는지 강조하고, 그것을 통해 실패의 사회적 비용을 낮추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Jeff Bezos는 대중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When it's tough, will you give up? Or will you be relentless?
그리고 나는 relentless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렇게 하기를 격려할 것이다.
입력: 2025.07.2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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