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강. 왜 우리는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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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우리가 볼 수 있는 세상
밤에 하늘을 보면 우리의 태양과 다르지 않은 수천 개의 별을 볼 수 있다. 망원경으로 그들을 보면 더 많은 별들과 은하들을 관찰할 수 있다. 망원경을 통해 모은 데이터들을 통해 천문학자들은 우리의 태양이 대략 우리 은하(the Milky Way)에 있는 천억 개의 별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우리 은하 밖에는 최소 100억 광년 떨어진, 천억 개의 별들을 가진 또 다른 은하들이 천억 개 정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저 사건의 지평선까지 우리가 알아낸 정보이다. 현대 천문학적인 모델은 그 지평선 너머의 훨씬 더 광활한 크기의 우주를 보여주며, 이 모델은 다른 우주들까지 설명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지구, 해양, 구름, 산, 사막, 그리고 동식물로 시선을 옮기자. 그리고, 한 번 더 우리의 과학적 도구들은 현미경의 세계, 그리고 기껏해야 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원자들의 세계를 드러낸다.
우주의 막대한 크기와 복잡성, 미시적 세계의 이상함은 많은 비전문가와 과학자들로 하여금 우주가 영원히 신비에 둘러싸여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했다. 물론, 한정된 지성을 갖춘 인간들은 결코 우리의 감각과 기구들로 오는 데이터 이상의 정보를 담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이미 제안된 바 있다.
이 책에서, 나는 그 가정에 도전해 왔다. 우주는 이해 가능하다. 불가해한 신비로부터 벗어나서 현존하는 물리학과 천문학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 안에 있다.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몇 가지 일반적인 결론을 끌어내기까지의 노력들을 여기 간단히 요약해 둔다.
B. 발광하는 물체
물리학의 대단한 성공은 물리학이 단순한 도구에서 그친 것인 아니라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러한 모델은 단순히 이 세상이 무작위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아직 관측되지 않은 부분에 대한 놀라운 예측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확실히 물리학은 궁극적인 실재를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강조한 대로, 관측한 것을 묘사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모델들은 실제 세상을 흉내 낼 필요는 없다. 만일 그 모델들이 세상을 흉내내지 않아도 여전히 의미가 있다. 어떤 모델이 적절한 예측을 제시한다면 이것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데 쓰일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장에서 나는 자연의 실재에 대해서 사색하겠지만, 우리가 관측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최소한 두 개의 형이상학적인 모델밖에 찾지 못했다는 것에 다소 실망스러워 할 수 있다. 가장 단순하기 때문에 내가 선호하는 모델은 기초적인 입자들로 세계가 구성되어 있고 이들은 다른 텅 빈 공간으로 움직인다는 가설, 원자론이다. 나는 이것을 “원자론과 진공”이라고 부르겠다. 나에게 있어 이것은 이해 가능한 우주이다.
하지만 나는 수학자들과 몇몇 이론 물리학자들이 선호하는 또 다른 형이상학적 모델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Platonic model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전자들과 쿼크와 같은 물질들로 세계가 구성된 것이 아니라 시간-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수학으로 기술되는 추상적 공간, 양자장(quantum field)이라는 것에 의해서 구성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우주이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앞서 우리가 자신감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살펴보자. 무엇보다 과학에서 우리는 관측이라는 방법으로 지식을 얻는다. 관측이라는 것은 무언가를 차고, 그 차인 대상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차고 차인 대상을 알아보는 과정으로 나는 모든 관측에서 발견되는 에너지와 운동량 전달의 과정을 보다 정확하게 설명한다. 이때 물질이라는 것은 관측자에게 에너지와 운동량을 전달하는 대상으로 정의가 된다. 이 물질은 특정 운동에서 얻어진 데이터로 이름이 붙음으로써 구별 가능한 물체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이 모델은 그러한 특성에 관해 더 많은 가설을 세우고, 이들은 모두 실험과 관측을 통해서 테스트된다.
지금, 이 모델은 정의상 비물질적인 것들은 실재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누군가는 과학이 어떤 현장을 물질적으로 해석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 생각 모두 잘못됐다. 만일 순수하게 물질에 의존하는 이론이 모든 관측에 충분한 묘사를 제공한다면 어떤 추가적인 성분도 모델의 일부가 아니고, 또 그럴 필요가 없다. 반면, 만일 순수하게 물질에 의존하는 이론이 불충분하다면 우리의 모델에 추가적인 요소가 필요하다는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이 경우, 자연은 어떤 비물질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비물질적인 요소가 필요하다고 입증된 적은 없다.
공간-시간 모델에서 묘사되듯이, 가장 대표적인 관측의 형태는 광원에서 내보내는 빛이 물체에 튕겨서 우리 눈에 도달하는 방식이다. 또는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이 바로 그 광원일 수도 있다. 우리가 그들을 직접 ‘차’지 않아도 그들이 우리를 ‘찬’다. 우리의 다른 감각들(후각, 청각, 촉각)도 비슷한 과정들을 포함한다.
조심스러운 실험에서, 우리는 실험실에 있는 물체에 광자와 같이 운동량이나 에너지 변화를 측정할 수 있는 탐지 입자들을 쏘아서 우리의 관측을 정량화한다. 따라서, 기초적인 측정 과정은 관측자와 관측 대상 간의 운동량과 에너지 교환이라고 볼 수 있다. 과학적인 도구들과 함께, 우리는 가시광선 밖에 있는 광자들이나 뉴트리노와 같은 다른 입자들을 이용함으로써 관측 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 과학적인 관측은 인간의 다른 모든 관측행위보다 더 정확하고 더 정량화되어 있지만, 인간의 관측 행위도 상당히 정량화되어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생활에서 우리는 어떤 사건을 특정 시간과 장소로 기억하곤 한다.
과학에서 원자시계가 시간의 표준을 제공하고, 다른 시계들은 그 원자시계와 동기화된다. 최근 전통에 따르면, 두 점 간의 거리는 그 사이를 빛이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정의된다. 2장에서 우리는 관측되지 않은 지점으로 빛을 쏜 뒤 원자 시계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논의한 바 있다. 돌아온 신호의 타이밍을 통해 (존재한다고 가정한) 그 물체의 위치, 속도, 가속도, 그리고 다른 물리학적 변수를 측정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공간-시간 모델이 이러한 관측 방법을 묘사하기 위해 고안된 모델임을 주목하자. 우리는 물체를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고, 자연이 정말로 그런 물체들로 구성되고 있고, 거리, 속도 그리고 가속도와 같은 용어들이 자연의 진정한 요소인지 증명할 방법도 없다. 우리는 오직 이 모델이 단순하고 일관성 있다는 것을 논의할 수 있다. 모든 데이터에 일관적인 결과를 보여주는 한, 우리는 안전하게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공간- 시간 모델은 데이터들을 묘사하기 위한 우리의 유일한 선택지는 아니다. 1960년대 물리학자들은 공간과 시간을 그들의 이론적인 모델에서 제거하려고 노력했고, 운동량과 에너지(특히 4 운동량)로만 표현되는 모델, S-matrix theory 또는 bootstrap theory을 개발했다. 이 접근은 물리학에서 근본적인 과정은 입자간 상호작용이라는 사실에서 생겨났다. 하지만 그 모델은 예측 가능성이 낮았고, 공가-시간 모델이 타당함을 강하게 시사하는 쿼크의 발견으로 폐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matrix theory에서 Veneziano model은 초끈 이론으로 발전할 초석을 제공하였다. 초끈 이론은 단 4차원의 변수가 아니라 그 이상의 차원이 플랑크 스케일에서 엮여 있으면 세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4차원 공간-시간 모델에서, 입자는 크기가 너무 작아 측정할 수 없는 점과 같은 물체로 정의한다. 관측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측정 가능한 물체들이 기초적인 점 물질들의 집합이라고 가설을 세우도록 했다. 쿼크, 렙톤, 게이지 보존과 같은 표준 모형은 모든 데이터와 부합한다. 만일 기초적인 물체가 끈이거나 m-brane이면(점은 0-brane, 끈은 1-brane, 면은 2-brane 등), 그들은 너무 작아서 어느 정도 미래에서도 그들은 점과 같은 입자들로 보일 것이다.
C. 객관성 확보
실재에 대한 우리의 물질적인 모델이 주어져 있고, 공간-시간이 갖춰져 있다면, 우리는 역사상 인간이 관측해 왔던 것을 그 모델에 결합시킬 수 있다. 우리가 하나의 물체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듯이, 물리학자들은 데이터를 특정 한 사람의 관점에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그러한 모델이 전적으로 관측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해석은 주관적이고 이 세상에 대한 진리를 나타낼 것 같지 않다. 아마도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러한 주관적인 모델들은 다른 프레임에서 보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과학은 항상 객관성을 추구해 왔는데, 이는 이러한 방법이 더 좋은 결과를 보여줌을 역사가 보여줘 왔기 때문이다. 객관적 실재를 나타내는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적절한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서 물리학자들은 다른 관측자도 동일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공식화를 시도했다. 그들이 모델을 공식화 해 감으로써, 그들은 물리학의 규칙이라 불릴 만한 것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상정할(좀 더 기본적인 규칙을 찾을)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참으로, 우리는 가능한 가장 단순한 수학적 규칙들을 구성하여 이 자연을 묘사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우리의 뇌가 두 눈을 통해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각각의 눈은 2차원의 이미지와 에너지(색깔)를 측정하고, 두 정보를 합쳐서 모든 관측자에게 유사한 3차원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물리학의 규칙들을 물질의 행동을 제약하는 조건으로 여긴다. 확실이 보존 법칙은 전통적으로 그러하다. 예를 들어, 던져 올려진 공은 그 에너지가 허락하는 만큼만 높게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1세기 전에 Emmy Noether은 에너지 보존법칙, 선운동량 보존법칙, 각운동량 보존법칙이 공간-시간의 대칭성에 깊게 연관된다고 증명했다. 그러한 관점에서 에너지는 시간에 따른 수학적 요소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에너지는 측정 가능한 대상이다. 우리의 눈은 색깔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측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에너지를 측정하는 일반적인 장치, 열량계만 다루도록 하겠다.
단순하지만 매우 부정확한 열량계는 물의 온도를 측정하는 온도계와 물이 있는 고립계로서 만들 수 있다. 움직이는 물체는 물 속으로 들어가 느려진다. 그 물체의 초기 운동에너지는 물의 온도 증가로 측정될 수 있는 물의 열량 변화로 측정된다. 여기서 손실된 운동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바뀌었다는 가정이 숨겨져 있다. 나머지 에너지도 화학반응이나 핵반응이 일어나면 열로 바뀔 수 있다. 만약 실험자가 보다 정확하게 분석하고자 하면 소리의 발생과 같은 다른 에너지 감소 요인을 확인해야 한다.
우리가 열량계뿐만 아니라 물체의 운동을 방해할 어떤 도구도 없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는 그 물체가 일정한 에너지를 갖고 운동을 지속할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여기서 에너지가 보존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 그렇다면 물체는 특정 빈 공간으로 이동할 때 느려지거나 멈출 수 있다. 비슷하게 더 빨라질 수도 있다. 그 어떤 것도 물체가 빨라지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측정된 질량이 바뀌거나 그러한 복합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고전물리학에서 질량이란 물체가 가지는 불변의 정적인 양이다. 운동량은 말 그대로 운동하는 물체의 양으로 불변의 동적인 양이다. 에너지는 물체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고, 일은 힘의 유용한 응용이다. 이러한 물리량들은 기초 물리학 교과서에 정의되어 있다.
단순하게 물체의 질량이 상수여서 어떤 에너지 변화도 속도 변화를 통해서 측정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그때, 빈 공간을 움직이는 물체의 비디오를 만들자. 에너지가 상수인 경우, 우리는 특정 프레임이 어떤 시간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즉, 우리는 각 프레임별로 분명한 기준을 두고 나눌 수 없다. 반면에, 에너지가 상수가 아니면(에너지 보존 법칙이 관측하는 행위로 인해 바뀐다면) 비디오의 각 프레임은 시간에 따라 구별될 수 있다. 그리고 에너지 보존과 시간과의 불변량을 찾을 수 있다.
이 현상에서 무엇이 일어났는가? 에너지 보존 법칙이라고 불리는, 우주를 구성하는 특별한 규칙은 고립된 물체를 일정한 에너지로 운동하는 것을 유지시킨다.
나는 대안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에너지는 우리 물리학자들이 발명한 개념이고 열량계로 측정 가능하도록 정의되었다. 어떤 관점에서 보든 일관성 있는 결과가 나오도록(즉, 이 경우에서는 시계를 언제 시작하느냐에 상관없이) 그 양은 시간과 무관한 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보다 정확하게 해 보자. 만일 우리가 특정 관측자의 시각에 의존하지 않는 공간-시간 모델을 만들고자 한다면, 그 모델은 열량계에서 읽은 수치를 의미하지만, 다소 의미가 추상화된 에너지라는 개념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 비슷하게, 그 모델은 선운동량과 각운동량이라는 개념도 포함해야 한다.
지금, 뇌터가 그녀의 이론을 발견하기 전 헬름홀츠가 1847년 에너지 보존 법칙을 발견했을 때 그런 논의가 가능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건대, 비록 에너지가 뉴턴역학의 분명한 요소는 아니었지만 뉴턴 법칙으로 시간에 불변하는 양을 유도할 수 있으므로 내재적으로 에너지 보존을 함축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상, 에너지 보존 법칙은 대학교 1학년 생이 뉴턴 법칙으로 유도할 수 있는 법칙이다.
D. 반증가능성
비슷한 논의가 다른 보존법칙에 적용된다. 측정 방식으로서 기능적으로 정의된 선운동량과 각운동량, 전하, 핵자, 그리고 몇몇 다른 양들이 다른 공간-시간 모델에서도 보존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보존법칙은 그러면 법칙이 아니라 일반적인 원리가 된다. 사실상, 그들은 “non-law이거나, 내가 선호하는 호칭인 “lawless law”이다. 공간-시간 모델에서 특정 위치와 방향을 가리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법칙이라고 해석할 만한 몇몇의 운동이 요구된다. 그러나 우리가 대신해서 보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운동을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이 특정 관점에 의존하지 않아서 객관적인 실재를 표현하기를 바란다.
만일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면, 우리는 관점독립성의 원리를 버려야 하는 심각한 예를 하나 들겠다. 1920년대 후반, 다양한 원자로부터 나온 베타광선의 에너지 스펙트럼을 측정했다. 그 기초 원리는 핵 내 중성자 하나가 전자와 양성자로 변하는 베타 붕괴에 의한 것이었고, 베타 광선은 전자를 통해서 측정 가능했다. 중성자의 초기 운동량은 0이었으므로 양성자와 전자는 서로 반대방향으로 같은 크기의 운동량을 가져야 했다. (그 운동에너지는 중성자의 질량 결손에서 기원한다.) 전자의 선운동량을 고정했기 때문에 전자의 운동에너지도 고정되어야 했다. 하지만, 이것은 관측 결과와 달랐다. 오히려 전자의 에너지가 연속적인 스펙트럼을 그렸다.
이 실험은 에너지가 다른 형태로 바뀌었거나 보이지 않는 입자가 생겨났음을 함축했다. 후자의 가능성은 각운동량 보존 법칙이 문제가 됐다. 왜냐하면 3 입자는 모두 스핀이 1/2였는데, 3 입자 반응에서 각운동량을 맞출 방법이 없었다.
1930년 볼프강 파울리는 보이지 않는 입자가 엔리코 페르미가 추측했던 스핀이 1/2이고 질량이 매우 작은 뉴트리노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 뒤 25년 후 뉴트리노가 실험실에서 최초로 확인되었다.
지금, 뉴트리노가 발견되지 않고 반응이 항상 2개의 입자만 형성된다고 가정하자. 이것은 에너지 보존법칙, 선운동량보존, 각운동량보존법칙이 위배된다. 이 함축은 우리의 관측을 묘사하기 위해 소개한 규칙들이 관측결과를 설명하는 데 있어 곧잘 연관되어 있음을 함축한다. 지금까지 그 규칙들이 틀렸다고 밝혀진 적은 없었다.
이것은 또한 왜 우리가 소개했던 것들이 포스트모더니즘과 충돌하지 않는지도 보여준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뭐든지 된다. 하지만 이것은 물리학에서 진실이 아니다.
요약하자면, 우리의 모델의 기초를 제공하기 위해 사용된 관점독립성 원리는 저명하게 테스트 가능하며, 반증 가능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반증된 적은 없다.
E. 힘의 개념
이제 우리의 힘의 개념을 상기하자. 고전 물리학에서 보존 법칙은 물체의 운동을 묘사하는 운동 방정식과 힘의 개념이 관여한다. 양자 물리학에서는 그러한 방정식이 물체의 평균적인 운동을 묘사한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힘은 물체의 운동 변화 같은 어떤 사건을 일으키는 일으키는 요인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기본적인 힘들이 물리학자가 서로 다른 관점 사이에도 운동 방정식이 상호 위배되지 않도록 고안한 물리량임을 알고 있다.
원심력과 코리올리힘은 고전물리학에서 제안되어서 회전하는 계에서도 여전히 뉴턴 법칙을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힘들이 모든 프레임에서 존재하는 것은 아님을 주목하자. 만일 당신이 지구 위에 떠 있고 지구가 회전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당신은 원심력과 코리올리힘을 사용해서 물체의 운동을 기술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지구 위 고정된 장소에서 뉴턴 법칙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관점독립성(여기서는 뉴턴 역학)을 지키기 위해 이러한 힘들을 소개할 필요가 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이 다른 관점에서의 결과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균일한 중력장 하에서 낙하하고 있는 관측자는 어떤 중력도 경험하지 않는다. 관측자의 상황은 천체 멀리 떨어진 캡슐 안에 있는 관측자의 상황과 전혀 다르지 않다. 반면에 지구 위에서 엘리베이터가 가속을 갖고 아래로 낙하하는 것을 보고 있는 관측자는 엘리베이터에 가속도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동일한 관성가속도로 가속하는 엘리베이터 안의 관측자와 동일한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관성력은 원심력이나 코리올리힘처럼 허구적인 힘이다.
그렇다면 물체를 지표면으로 가속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고전적인 묘사가 언급하는 대로 우리는 이것을 중력이라고 부른다. 또는 만일 누군가가 관점에 상관없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원한다면 우리는 물체가 geodesic라고 불리는 휘어진 곡면 위의 최단 경로를 따라 물체가 운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이것은 모델에 의존한다. 이 경우에서, 일반 상대성 이론은 우월한 모델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서 다른 모델들은 동일한 현상에 대해 충분하지만 서로 모순적인 현상을 설명한다. 그때 어느 한 이론을 다른 이론에 비해 진짜 실재라고 보기 어렵다.
참으로, 운동 그 자체는 우리가 만든 것이다. 우리가 공간과 시간을 정의할 때, 시계를 이용한 측정과 우주에서 움직이는 물체를 떠올렸음을 상기하자. 힘의 규칙은 이 모델에 일관적인 구성을 보증한다. 즉, 그 과정(구성?)은 임의적이지 않다. 운동과 힘은 우리의 발명품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오래된 모델도 해내지 못한 것을 해냈다. 이 모델은 관측 결과를 정확하게 묘사할 것이다.
우리 모델에서 제안된 공간-시간의 조화는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물체의 서로 간의 관점은 동일하다는 갈릴레오 상대론을 포함한다. 그렇지만 갈릴레오 변환이 적용되는 영역은 빛의 속도보다 한참 작은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들에 한해서다. 로렌츠 변환으로 인한 더 일반적인 관점은 모든 속도를 다룰 수 있다. 일단 우리가 로렌츠 변환을 얻고 여전히 일관성을 유지해야 할 운동량과 에너지의 적합한 형태를 갖추고 난 후, 우리는 시간 팽창, Fitzgerald-Lorentz 수축, E=mc2 등의 결과를 얻었다. 즉, 특수 상대성이론은 우리가 객관적 실재를 묘사하고자 하는 열망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보았듯이, 로렌츠 변환과 함께, 내가 Leibniz-Mach 원리라고 불렀던 마하의 원리 등이 일반 상대성이론의 발전을 낳았다. 이 원리는 또한 자연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자 하는 노력에 따른 영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주 내 물체는 그 자체로 가속할 수 없다. 스스로 가속할 수 있는 대상은 없다. 두 번째 물체가 필요하다.
아인슈타인은 주어진 입자의 위치에서의 에너지-운동량 텐서가 근처에 있는 다른 물체들, 즉 우주의 모든 다른 물체들에 영향을 줌을 깨달았다. 텐서는 질량 또는 에너지 밀도의 개념으로 로렌츠 변수를 확장시킨 것이다. 밀도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단 하나의 물체에 대해 쓰이는 에너지-운동량 텐서는 그렇지는 않다. 텐서는 벡터의 일반화다. 벡터는 좌표계 상에서 어떤 화살표와 회전된 각도와 크기에 대해서 일정한 것들의 집합이다. 텐서도 또한 그들의 성분은 달라질 수도 있지만 회전과 크기가 일정한 변수들의 집합이다. 한 관점에서 다른 관점으로 이동할 때 변환 방정식이 요구된다.
아인슈타인 모델에서 아인슈타인 텐서라고 불리는 또 다른 텐서는 뉴턴의 중력 상수 G를 포함하며 선형 증가하는 에너지-운동량 텐서와 동일시 된다. 이 텐서는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중력장으로서 여겨진다. 아인슈타인의 모델에서 특정한 수학적인 기법이 비록 그것이 자연을 기술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겠지만 이것은 공간-시간 계에서 주어진 공간의 기하적 구조를 설명할 수 있고, metric tensor로 다양한 설명을 허용할 정도로 단순하다. 추가적인 가정 없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은 유도 가능하다.
F. 상수들
그러면 상수 G는 어떠한가? 이 상수는 어디에서 유래되었는가? 광속 c와 플랑크 상수 h처럼 G도 몇몇 물리학자들에게 있어 의문스러운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c와 h가 임의적인 환산 계수임을 확인했던 것처럼 G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다. 중력의 힘의 크기는 조절 가능한 척도가 아닌 것이다! G의 특정한 가치는 당신이 계를 설명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단위라는 점이다. 당신은 모든 물리적 계산을 h=c=G=1로 맞출 수도 있다.
지금, 이것은 자연의 다른 힘들은 중력에 비해 임의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그 장점은 차원이 없는 척도로 표현 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양성자 질량의 정수 배로 설정 가능하다. 원리적으로, 어떤 질량도 단위 질량으로 선택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서 중력의 상대적인 힘은 전자기력이나 다른 기본 힘에도 관계가 되는 mass parameter에 의존하게 된다. 질량과 중력의 관계는 전하와 전자기력의 관계와 같다. 힘들의 상대적인 힘들을 측정하는 차원이 없는 숫자들은 언젠가 근본적인 이론에 의해 계산될 테지만, 현재 우리는 그들의 가치를 실험에서 결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여전히 그들의 가치 부여가 사실은 우리의 실수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허용해야 한다.
G. 진공의 Lawless Law들
실험 데이터는 물질이 반드시 복종해야 하는 규칙들의 집합을 항상 나타내지는 않는다. 우리의 관측 가능한 우주도 사실상 어떤 요소가 부재한 것처럼 보인다. 물리학의 법칙들은 매우 빈약한 계획에서 나온 “ruleless rules”이거나 “lawless laws”이다. 그들은 진공의 규칙들이다.
방사성 핵 붕괴를 떠올리자. 수백 가지의 예시들이 20세기 초부터 상당히 정확하게 연구되어 왔고 이 모든 데이터들이 그 사건들이 무작위적이고 비인과적이라는 것을 나타냈다.
6장에서 논의되었듯이, 방사성 핵 붕괴의 지수곡선은 붕괴의 확률이 매 시간 구간마다 일정하고, 시간에 무관할 것임을 보여주었다. 방사성 붕괴에서 flat보다 지수적인 분포가 많이 관찰되는데 이는 원자들이 붕괴할수록 그 수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발전시켜왔던 언어에 따르면 붕괴 확률은 시간진행대칭을 가진다.
지금, 물리학자들은 관측된 곡선을 “지수 붕괴 법칙”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몇몇 외부의 요인이 핵이 무작위적으로 붕괴한다고 추측하는 반면, 현재 정설은 이것이 단순히 그 자체로 무작위적이라는 것이다. 만일 우연한 과정이 시행된다면, 거기에는 선호하는 시간 분포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우리는 붕괴가 일어나는 이유를 공정한 동전이 앞면으로 떨어질 확률과 뒷면으로 떨어질 확률이 같은 이유보다 더욱 설명해야 할 이유는 없다. 더욱 단순한 결론은 보이지 않은 무작위적인 요소는 우주에서 없다는 것이다.
이 예시에서, 지수적인 “규칙”은 시간진행대칭을 갖는다. 이것은 시간에 따라서 특징적인 무언가를 가지지 않는 진공의 규칙이다.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물리학의 전 우주적인 원리들은 진공의 lawless laws라고 명명될 수 있을 것이다.
H. 왜 무언가가 실재하는가?
이제, 당신은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만일 우주가 전 우주적인 진공의 특성을 갖는다면 왜 순수하게 진공이 아닌가? 그 답은 진공이 우주에서 물질인 것보다 덜 안정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자주 물리학에서 꽤 대칭적인 계가 덜 대칭적인 계보다 안정적이지 못한 경우를 발견한다. 이것은 계가 더 낮은 에너지 상태가 되려고 반응하는데, 덜 대칭적인 상태가 더 낮은 에너지 레벨을 가지기 때문이다. 한쪽 끝으로 서 있는 연필 한 자루는 수직축에 대해서 회전 대칭을 갖지만, 불안정하여 가벼운 튕김에서 넘어지고 만다.
눈송이도 또 다른 예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눈송이가 녹는 것을 보는 데 익숙하지만 이것은 오직 우리가 사는 환경의 온도가 평균적으로 어는점 이상이기 때문이다. 환경의 에너지가 그 구조를 파괴하는 것이다. 눈송이를 고립된 진공에 두면, 원리적으로 영구히 지속한다.
진공은 꽤 대칭적이어서 우리는 덜 대칭적인 상태로 자발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잘 만들어진 모델의 계산은 꽤 대칭적인 상태가 항상은 아니더라 일반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것을 지지한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Frank Wilczek는 내가 구상하고자 했던 그림을 환상적으로 요약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기초 입자들 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현대 이론들은 물이 액체나 고체로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우주도 여러 상태로 존재할 수 있음을 제안한다. 다양한 상태에서 물질의 상태는 다르다; 예를 들면, 특정 입자들은 어떤 상태에서는 가볍지만, 다른 상태에서는 무겁다. 격자 배열이 공간 상에서 특정 위치와 방향을 결정하는 얼음보다 물이 더 대칭적인 것처럼, 물리학의 법칙은 그들이 다른 상태로 있을 때보다 지금 이 형태가 더 대칭적이다.
이러한 모델에서 우주의 대부분의 대칭적인 상은 불안정하다고 밝혀졌다. 누군가는 대부분 대칭적인 상태로 시작한 우주가 존재할 수 있고, 거기에서는 물질이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2번째 상태는 약간 덜 대칭적이지만 에너지 수준도 낮다. 마침내 덜 대칭적인 상태는 빠르게 자란다. 상 전이로 인해 방출된 에너지는 입자들의 생성의 형태로 발견된다. 이 사건은 빅뱅이라는 형태로 확인될 수 있다. 입자들의 우주가 전기적으로 중성이라는 점은 물질이 빠져 있는 우주도 전기적으로 중성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 우주의 회전이 결여되어 있는 점은 우주가 상전이에 가장 적합한 환경과 물질과 반물질 사이의 비대칭성이 깨진 현상을 포함하는 subsequent growth 사이에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대의 질문, “왜 무언가가 실재하는가?”에 대합은 “아무것도 없는 것은 불안정하기 때문”으로 답할 수 있다.
이것은 우주가 어떻게 무에서 왔음을 암시하는가? 무의 의미는 끝없는 토론의 주제가 될 수 있다. 당신은 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무를 정의하기 전에 무의 특성은 무엇인가? 만일 무라는 게 어떤 특성이 있다면 왜 이것은 이 세상의 다른 어떤 것일 수는 없는가? 철학자 Bede Rundle가 그의 책 Why there is Something rather than Nothing?에서 “무언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결론 지었다.
나도 진공을 당신이 모든 물질과 에너지를 제거한 상태라고 정의해 왔다. 어떤 물리적인 양들도 진공에서는 측정될 수 없다. 진공은 당신이 찬다고 한들 어떤 반응도 하지 않는다. 만일 이 진공이 무가 아니라면 나는 정말 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만일 진공이 불안정하다면 우리는 무의 또다른 상태로서 “실재”가 정의 된다. 마치 얼음과 증기가 물의 다른 상태이듯이.
I. 레퍼런스
○ The Comprehensible Universe - Stenger, Victor J
○ Why is the Physical World So Comprehensible - P.C.W. Davies
입력: 2015.12.17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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