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지평선과 AI라는 돌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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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딥마인드에서 개발한 AlphaFold2가 노벨상 후보군으로 거론되었다는 뉴스에 놀란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난 5월 9일에는 AlphaFold3가 발표되어 이제 단백질 간, 핵산 간, 혹은 단백질-핵산 간 상호작용까지 볼 수 있게 되었다. AlphaFold2와 달리 AlphaFold3는 소스 코드가 비공개이고, non-commercial only를 엄청나게 강조하여 인공지능 프로테오믹스 분야에 독점 사업을 벌이려는 구글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물론, AlphaFold3 슈도 코드가 공개된 탓에 전세계 곳곳에서 AlphaFold3를 reverse-engineering 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진다는 흥미로운 소식도 들려온다.
AlphaFold3의 등장은 AI가 새로운 지식을 생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밖에도 AI가 지식을 생성할 수 있다는 연구로는 똑같이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FunSearch라는 모델이 있다.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는 AI는 전세계에서 거의 구글 딥마인드만 하고 있음에 경외감을 느끼며, 이 분야는 언제나 나의 상상력을 크게 자극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인지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근 `인지의 지평선`이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이 단어를 떠올리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의 지평선`은 우주의 팽창 속도와 빛이 우리에게 도달하는 속도가 균형을 이루는 지점으로서, 관측 가능한 우주의 경계를 정의한다. 비슷하게 인간도 인지 가능한 우주의 경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가령 분자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미시적 경계`) 혹은 거시경제나 하루 앞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것 (`거시적 경계`)이 그 예라고 여겨진다. 이는 창발성으로 다양한 지식이 층위를 이루는 이 세계에서 우리와 비슷한 크기의 창발성을 갖는 범위에서만 이해 가능하며, 그것보다 훨씬 작거나 훨씬 큰 세계는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양자역학과 일반 상대성 이론을 합치려고 하는 대통일 이론은 왜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실패했는가? 우리의 인지 가능한 범위가 아닌 것은 아닐까?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님은 조합론과 기하학을 결합하여 여러 수학 난제를 풀었다. 수학은 기하학, 대수학, 조합론, 정수론 등 4개의 분야로 나뉘어지고, 둘 이상을 합치는 방법의 경우의 수는 (24 - 4) = 12개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게 조합하여도 풀리지 않는 수학 난제는 인간의 노력으로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다고 봐야 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AlphaFold3와 같은 AI 모델이 있다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까지 인지의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인지의 지평선을 초과하는 범위에서의 이해는 오직 AI만 이해할 수 있으므로 기존 일자리를 없애거나 하지는 않고, AI로 인해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우리의 인지의 지평선을 넓히는 새로운 지적 존재를 일컫어 나는 `관측기기로서의 AI`로 부른다. 망원경이나 현미경과 비슷한 기능을 하기에. 실제로 4색 문제를 풀었던 컴퓨터 프로그램도 `관측기기로서의 AI` 중 하나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새로운 지적 존재라고 한 이유는 AlphaFold3의 근간이 된 디퓨전 모델이 이 지구상에는 없었던 새로운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트랜스포머로 작동하고, 우리의 눈은 비전 트랜스포머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디퓨전 모델은 일부러 원본 이미지를 흐리게 만든 뒤 다시 원본 이미지를 복원하는 기술로서,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지적 존재는 지구상에 역사적으로 한 번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컴퓨터 비전 분야야 비전 트랜스포머가 워낙 잘해서 디퓨전 모델이 크게 활약하지 못했는데, 프로테오믹스는 오직 디퓨전 모델만 잘 워킹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양자역학적 불확정성이 지배하는 분자의 세계에서 일부러 노이즈를 부여하는 인지 체계가 꼭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새로운 `관측기기로서의 AI`가 존재할 수 있을까? `관측기기로서의 AI`의 존재 성립요건인 1) 다량의 학습 데이터 존재, 2) 인간의 인지 범위 초과를 고려하면 새로운 분야를 예측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아직 나는 AlphaFold3가 프로테오믹스의 모든 가려운 부분을 해소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시간에 따른 분자동역학 시뮬레이션이나 부생성물마저 예측하는, 유기화학 반응을 위한 디퓨전 모델이 곧 나오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불확정 대규모 명제 집합에 대한 논리 추론 AI, 논리 추론을 넘어 새로운 공리를 만드는 AI (이 부분은 트랜스포머는 안 되는데, 사람은 할 수 있다), 기상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AI, 우주의 역사를 재현하는 AI, 1분 뒤의 거시경제를 예측하는 AI (다만, 역사의 불확정성은 실재해서 1시간 뒤의 거시경제를 예측하는 정도는 아닐 것이다)가 그 예시가 될 수 있다.
입력: 2024.06.08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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